1. MZ세대
MZ 세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1980년대 부터 2000년 초반 사이에 태어난 이들로 밀레니엄(M) 세대와 Z세대를 통칭한 칭호다. 1981~1996 사이에 태어난 M세대는 최초의 글로벌 세대이자 인터넷 세대이다. 따라서 인터넷 모바일 장치 및 소셜미디어에 익숙한 세대로 디지털 원주민 세대이다.
1997~2010 사이에 태어난 사람들을 기준으로 잡는 Z세대는 대부분 그 전 세대인 X세대의 자손으로 이미 부모가 인터넷을 사용하고 디지털 환경을 경험한 가정에서 자랐다. 따라서 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연스레 디지털 원주민이 되면서 새롭게 부상한 동영상 방식의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을 통한 소셜 네트워크를 접하게 되었고, 전세계 네트워크에 익숙한 세대가 되었다(위키백과)
이들 MZ세대는 인류가 지난 반만 년 이상 살아오면서 익숙한 정보 습득과 활용방식. 집단 의식과 의사결정 과정, 사회 운영 시스템에 대한 다양한 도전과 혁신을 일으키고 있다.
각종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중고 물품거래, 혼자 사는 것을 즐기면서 부동산 전월세 정보, 혼밥 혼술에 익숙하고 각종 음식과 생활 편의 설비들을 온라인으로 이용하는 배달 세대이다.
물론 여기에는 IT 디지털 기술의 발달과 최근에 급격히 보편화되는 비대면 방식의 사회적 현상도 일조를 하고 있다.
2. 정보화 사회
MZ세대가 종전과 다른 생활방식, 가치 기준의 차이에 대한 원인은 무엇인가?
여러 가설이 있겠지만 필자는 '정보'에서 그 해답을 찾고자 한다.
인류는 지난 5,000년 동안 정보의 비대칭에 따른 사회를 구성하고 특정 집단이 주관하는 사회적 운영방식과 질서에 익숙해져 왔다. 즉 권력을 가진 집단은 정보를 독점하고 그 정보를 활용해서 피지배 계층을 관리하고 통치하는 사회적 시스템 권력구조가 보편적으로 유지되어 왔다.
고대 부족 국가는 물론, 중세 왕정이나 공화정도 지배 계층의 정보 독점이 권력의 큰 자산이었다. 이러한 흐름은 오늘날 많은 국가에서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지배계층은 독점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사회적 규율을 만들고 피지배계층에 규율의 준수를 요구하면서 사회적 질서를 유지하여 왔다.
간혹 이러한 지배계층 질서에 도전하거나 규율을 어기면 제재를 가하고, 보편적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조차 파문이라는 제도를 통해 커뮤니티에서 소외시켰다.
지식 전수는 대부분 가정이나 학교라는 제도화된 교육 기관을 통해 이루어져 왔다. 오늘날에도 아이가 태어나면 부모를 통해 기초 정보를 받아들이고 학교라는 공공 교육시스템에서 사회 진입을 위한 정보와 적응에 필요한 소양을 키운다.
그러나 20세기 들어 인터넷이 보편화되고 스마트폰에 따른 모바일 정보 공유가 일반화되면서 세상은 바뀌었다.
우리나라 공교육도 심한 도전을 받았다. 실제 일선 학교 수업 현장에 가보면 대부분의 학생들은 수업을 듣기보다는 잠을 자는 경우가 많았다. 학교에서 얻는 지식보다 학교 바깥에서 또는 인터넷이나 다른 디바이스를 통해서 그 이상의 지식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필자도 모 대학교에서 강의를 할 때, 학생들이 고개를 숙이고 책상 밑에서 무엇인가 열심히 찾는 것을 종종 목격하곤 했다. 방금 강의한 내용이 맞는지, 다른 내용은 없는지를 인터넷을 통해 검증하고 있음을 나중에야 알고는 더 바짝 긴장하게 되었다.
물론 강의중에 대놓고 이의를 제기하는(용기있는) 학생은 없었다. 좋게 보면 강사에 대한 예우이지만 나중에 강의 후기에 무기명으로 평을 달면 그만이니 굳이 얼굴을 드러내고 나설 일이 아니라는 점도 한 몫 하였다고 본다.
무기명으로 숨어서 자신의 걸러지지 않은 감정을 편향되게 올려서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오늘날 흔하디 흔한 일상이 되고 말지 않았는가?
3. 시공간 확대
정보의 비대칭이 깨지고 누구나 수시로 공유하게 되면서 정보에 대한 희소가치가 없어지고 그에 따른 교사 또는 정보 제공자가 받아야 될 존경과 기득권 보호는 사라졌다.
지금은 태어날 때부터 모든 사회가 디지털화되고 있고 정보가 보편화 돼 있는 세상이다.
MZ세대는 말귀를 알아듣기 시작할 때부터 이미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을 다룰 줄 알고 인터넷을 통해서 만화를 보거나 게임을 시작한다. 그 속에서 수많은 정보들이 개인의 성장이나 사회 적응에 필요한 지식과 소양 형성에 직접 간접적으로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고 본다.
디지털 시대에 사람들은 학교라는 제도권 틀에서 벗어나 시간과 공간을 무한대로 확장하여 정보를 습득하고 이용하고 있다. 이들은 시간 공간 제약의 경계를 벗어나면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어디서나 정보 습득이 가능하고 자기 주변과 소통한다.
지인들 모임은 물론 다른 지방의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도 소통하고 심지어 전세계 사람들과 관심주제에 대해서 공감하고 '좋아요'를 누르거나 별풍선을 날린다.
여기에는 최근에 급격히 성장하고 있는 YouTube, Instagram, TikTok등 다양한 미디어 매체가 이들의 활동 영역의 확장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지하철에서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정보를 받아들이고 소통하고 있다. 이웃 휴대폰을 어깨너머로 들여다보면 쇼핑몰에서 필요한 신상품 정보를 찾거나, 강의를 듣고, 게임을 즐기고 있다.
또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 포털을 통한 새로운 정보에 예민하게 손가락을 오르내리고 있다. 이들 표현으로는 '벽타기'라고 한다.
4. 정보화 명암
이런 정보공유를 즐기면서 이제 그 관심이 주변 예민한 사회를 넘어서 생명공학 우주로 넘어가고 있고 심지어는 현실을 벗어나는 가상 세계 즉 메타버스로 무한히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보는 본질적으로 명암이 엇갈리고 있다.
공정하고 올바른 정보도 많지만 특정 내용만 확대해서 부풀리거나 특정 이해관계에 따라 짜깁기한 정보들은 정보의 오염을 낳고 잘못된 판단으로 피해를 주기도 한다.
작성자의 의도에 따라 일방적으로 쏠리게 만드는 편향된 내용들은 생각보다 많다. 따라서 자기가 좋아하는 정보에 일방적으로 치중하다 보면 균형감각을 잃고 본의 아니게 잘못된 방향으로 쏠려서 상황 판단을 그르치기도 한다.
최근에 코인 사기 사건이나 특정인에 대해 “~카더라”식의 무분별한 SNS들은 소속집단의 판단을 흐리게 하고 피로감만 쌓이게 한다. 일부 정치인들이 의도적으로 악용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이런 정보의 홍수에서 올바른 정보를 찾아내고 균형감각을 유지하는 것은 우리가 풀어 내야할 또 다른 큰 숙제이다.
결론적으로 인류가 반만 년 이상 유지해 왔던 정보의 비대칭에 따른 사회적 질서는 이제 모든 사람이 정보를 공평하게 공유하는 기회를 갖게 되면서 무너지기 시작하고 있다. 이에 대한 공감대와 새로운 판단 가치 기준이 필요하다.
5. 탈 중앙화
디지털 기술의 발달에 따른 정보의 공유와 비대면 확산은 필연적으로 탈중앙화를 유도한다고 본다.
이제는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부모나 스승에게 물어보기보다 인터넷에서 손쉽게 정보를 구할 수 있고 전문가들의 비평도 함께 담아 낼 수 있다.
노력하면 잘 정리된 다양한 정보를 구할 수 있고, 여러 각도의 평가를 통해 나름 균형된 시각도 갖출 수 있다.
우주, 양자물리, 생명공학, 바이오, 에너지 등 꽤 전문적인 분야의 다양한 정보도 대중들의 인기를 모으기 시작한다. 과거에는 특정 연구실이나 단체, 권위있는 교수에게서 겨우 접해 볼만한 고급 내용들이 인터넷 지식 바다에는 넘쳐 난다.
구글 검색창에 "양자 물리"하고 입력하면 789,000건의 고급정보들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물론 이런 정보들이 다 정확하고 소기의 목적에 맞는 정보가 되지는 않지만 다양한 키워드 알고리즘을 적용한 인공지능(AI)이 짧은 시간에 효율을 올려 줄 것이다.
이러한 정보의 보편성과 손쉬운 접근성은 이제 개인이 어떤 특정 집단에 고정적으로 소속되지 않아도 가능한 길을 열어주면서 집단 소속에 따른 의무와 부담을 줄여준다.
필요에 따라 특정 주제를 중심으로 모여 뜻을 같이 하고 열심히 활동하다가 원하는 결과를 얻거나 상황이 바뀌면 바로 헤어진다. 아쉬움에 모임이 반추삼아 이어지기도 하지만 또 다른 모임에 관여하게 되니 시간과 공간의 여유 마련이 쉽지 않다. 즉 수시로 만나고 아무 때나 자유롭게 헤어지는 또다른 인간관계 방식이 보편화되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작게는 커뮤니티의 변화이지만 확대하면 특정 권력에 대한 탈중앙화로 비쳐질 수 있다.
6. 개인주의
누구든 권리는 좋아하지만 그에 수반되는 의무는 달가워하지 않는다. 더구나 일방적이고 상시적인 의무는 부담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자기주장이 앞서면서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사례가 빈번해지는 것도 이런 맥락의 일환이라고 본다.
아파트 같은 지역공동체 공간에서 주차나 층간 소음 등 분란이 잦아지면서 주변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일부이기는 하지만 사회적 질서에 순응하고 타인을 배려하기보다 자기 주장이 앞서고 자기 편익이 우선시되면서 갈등이 생긴다.
사이버 세상에서는 자기 중심적인 성향을 띠기 쉬운 반면, 시공간이 크게 확대되면서 갈등의 범위도 넓어진다. 각 개인들은 스스로 정보를 얻고,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활동해서 결과를 만들어 내면서 자기중심적이 되어간다.
각종 게임에서는 손끝만 잘 놀리면 수많은 사람이 죽거나 사라지고 왕국을 건설할 수도 있다. 여기서 얻는 만족감은 대체재가 없을 정도로 강렬하니 오늘날 게임 산업의 규모는 전세계적으로 확대되어 가지 않는가?
그러나 현실 세계는 전혀 다르다.
사회적 공유가치 기준으로 질서가 세워지고 규율이 따르면서 판단 기준이나 행동에 따른 여러가지 제약이 따른다. 도로나 공공장소에서는 금연해야 하고 무단횡단도 금하고 있다. 아무데서나 자유롭게 도로를 건너고 길가면서 담배를 피우던 사람들에게는 이런 규제가 불편하고 당혹스럽다.
이런 것들이 자발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수용하면 큰 문제가 없지만 자기 중심적으로 사는데 익숙하던 사람들에게는 불편하고 스트레스를 야기한다.
최근에 사회면을 뒤흔드는 말도 안되는 사건들은 이런 자기 중심적 사고에 따른 병리적 현상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이런 것을 막기 위해서는 역시나 공공교육이 중요하고, 사회 구성원들 간의 자발적 공감대를 만들어내는 커뮤니티 역할이 중요하다. 그 출발은 당연히 가정이니 가정교육의 중요성은 재상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7. 새로운 세상
이들 디지털세대의 특징을 잘 살리면 우리 사회 발전과 혁신적 진보를 일으키는 큰 에너지원이 될 수 있다.
인류 역사를 보면 혁신적 개발이나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대부분 그 사회의 저항을 불러일으켰었다.
갈릴레오가 지동설을 주장하자 종교적으로 파문 당했고, 고흐, 모네, 르노와르, 마네 등 기라성 같은 인상파 화가들도 초기에는 파리 화단에서 배척당하는 수모를 겪지 않았던가?
중국에서는 민간기업이 정보를 모아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자 중국정부는 정보통제에 나서면서 정보화사회의 흐름을 국가주도로 바꾸어 가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마차가 유행하던 근대사회에 자동차를 출시했을 때 마차에 익숙하던 이해관계자들은 거세게 저항했다. 영국의 "붉은 깃발 법"으로 대변되는 시대적 저항은 변화를 받아들이면서 전세계에 자동차 문화를 창출해내었다.
이제 뉴욕에서는 자동차가 오히려 불편할 정도로 많고 말을 탄 기마대가 지나가면 모든 사람의 시선을 끈다. 그러나 교통체증에 걸린 수많은 운전자들은 차 안에서 별로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자율주행 자동차가 상용화를 서두르고 있다. 자동차는 운전을 해서 이동하는 수단이 아니라 목적지로 가는 동안 차 안에서 대화를 하고 영화를 즐기고 편히 쉴 수 있는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바뀌고 있다.
한술 더 떠서 지상에서의 교통 체증을 넘어 이제는 드론을 활용한 3차원 공간이동 방식으로 바뀌어 가기 시작한다. 새로운 운항 규정을 맞춘 에어택시 개인 드론 또는 에어버스 등이 상용화될 전망이다.
현재 있는 빌딩 옥상에서 다른 도시 목적지로 바로 날아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율비행이니 이동 중에는 둘러 앉아 환담을 즐기고 영상을 보거나 회의를 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가 보다 창의적이고 사회적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시간을 대폭 확장 시켜준다. 실제로 하루 8시간 근무 중에 창의적이고 부가가치 확대에 기여하는 생산적 시간은 불과 서너 시간에 남짓한다.
나머지 시간은 생산적 시간을 위한 준비 또는 휴식 담소 개인위생 등 여러가지 용도로 쓰는 소모적 시간이다. 즉 생산적 시간과 소모적 시간의 비율을 보면 하루 8시간 중 생산적 시간은 반이 넘지 않을 것이다.
생산성이 수익에 직결되니 인건비가 싸다고 생산성이 떨어지는 곳에 무조건 투자하면 수익을 내기 어려운 이유이다.
그러나 앞으로 이런 자율주행 자동차 또는 자율주행 비행체가 상용화되면 생산적 시간은 대폭 늘어난다.
어디 이 뿐인가?
재택 근무하거나 헬스장에서 런닝머신을 타면서도 우리는 계속 생산적 시간을 늘려갈 수 있다. 즉 시간과 공간의 무한한 확장이 바로 다가오는 메타버스 세계의 핵심 가치가 될 것이다.
8. 가치 창출
또 하나 주목할 변화는 정보의 비대칭 구조가 바뀌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정보를 공유하고 그 정보를 바탕으로 또 다른 사회적 기여를 이루어 낼 수 있다는 점이다.
기존 것에 비해 차이가 나고 누구나 공감하는 가치를 지니면 우리는 "좋아요"를 누르고 별풍선을 날려준다. 즉 거래가 시작된다.
앞으로는 새로운 지식정보나 기존 지식의 정리 편집조차 이용하기 편리하고 도움되는 가치가 있으면 창의성이나 노력에 대한 물질적 보상도 거래되는 시대가 될 것이다. 이러한 보상이나 거래 매개체로 떠오르는 것이 바로 가상화폐다.
더불어 이런 정보에 대한 창작 고유성을 보장해 주는 NFT가 보편화 될 것이다.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그림이 비싼 이유는 뛰어난 작품성도 있지만 세계 유일의 현존하는 작품이라는 것도 중요하다.
세계적 명작들이 위작 논란에 휩싸이고 또 수많은 창의적인 아이디어들이 임의로 모방되고 도용되면서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다행히 블럭체인 기반의 NFT(대체 불가능 토큰) 기술이 활용되기 시작하였지만 아직은 진입장벽이 높아 보인다.
미국 디지털 아티스트 "비플"의 NFT 그림은 무려 785억원에 거래되었고 엘론 머스크 여자친구인 그라임스의 그림은 NFT 플랫폼에서 65억원에 팔렸다고 한다.
이러한 기사들은 평생 아나로그식 예술에 익숙하여 온 수많은 아티스트들이나 사회에 충격을 주고 있다.
디지털 시대에 중요 미디어로 인기를 모으는 YouTube, Instagram, TikTok 등에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나 이슈 별 주제로 대중적 인기를 모으는 크리에이터들이 많다. 이들은 수많은 구독자들과 연결된 인플루언서로 마케팅에 큰 영향을 미치면서 광고와 협찬으로 적지않은 수익을 올리기도 한다.
전세계 유튜버 크리에이터나 이것을 유통하는 스트리머들에게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우선은 자기 작품에 대한 창작성, 고유성을 인정받고 그 가치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받기가 쉽지 않다.
특허나 별도의 법적 보호가 쉽지 않아 임의로 도용하거나 먼저 유통시켜서 이익을 편취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또한 이러한 크리에이터들의 내용들은 대부분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등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플랫폼을 이용하면서 지불하는 수수료가 만만치 않다고 한다.
최근 이런 크리에이터들의 고민을 해결하고 세계적 공급망을 연결하는 혁신적인 기술이 나오고 있다. 크리에이터들의 창의적인 작품을 NFT로 고유성을 인정받고 불법복제를 방지하며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등 전세계 50여개 라이브 스트리밍 플랫폼에 수수료 없이 동시에 송출하는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고 한다.
구독자들은 서비스 이용으로 특정 가상화폐를 사용하여 보상과 거래가 이루어지는 메타버스 생태계가 구축된다고 한다.
9. 가상화폐
가상화폐 거래는 이미 주식시장을 넘어섰다.
세계에서 제일 규모가 큰 뉴욕증시 한달 거래액이 $1,452 Bil(1,728조원), 나스닥이 $1,262 Bil(1,500조원)이지만 코인은 하루 거래액이 $516 Bil (614조원 '21. 5. 19기준)으로 전세계 증시 하루 거래액을 훌쩍 넘어서기도 했다.(Statista 참조)
한국시장도 예외는 아니어서 금년 9월까지 571만명이 3,584조원을 거래하였고 금년말까지 누적 거래량은 4,500조원으로 코스피 년간 거래액 3,100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이런 가상화폐의 유통은 필연적으로 각국 정부 중앙은행이 주관하는 기존 화폐 영역을 넘어서면서 이해관계가 부딪히기 시작한다.
중국을 비롯한 일부 국가가 가상화폐를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이유지만 사회가 디지털화되어 갈수록 다양한 서비스 거래에 특화된 가상화폐의 수요는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는 시각도 많아지고 있다.
이것은 기존 질서인 제도권과 개인 분산화, 즉 탈중앙화 간의 갈등으로 비쳐지기도 한다. 사회가 디지털화되고 비대면화 될수록 탈중앙화에 대한 니즈는 강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중앙집권적인 시스템과 개인 중심의 분산적 탈중앙화 흐름에 절묘한 조화가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