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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렌의 타임시크릿]
때로는 쿨하게 거절하고 쉬자
2021. 08. 09 by 이에렌 기자

프리랜서들 대부분은 늘 고용불안에 시달린다. 이번 달에 일이 많이 있다 하더라도 다음 달에 똑같이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이 들어오면 절대 거절하지 않고 무리하게 일정을 잡아 시간부족과 체력고갈에 시달리는 것이다. 분명 자유롭기 위해 프리랜서를 선택했는데도 말이다. 

실제로 프리랜서 강사 60명을 대상으로 프리랜서의 고충에 대한 설문을 진행한 적이 있다. 
그 결과 역시 프리랜서강사로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이 수입의 불안정성이라는 것이 46.7%로 
압도적 1위를 기록했다. 

통계: 미래경제뉴스
통계: 미래경제뉴스

나 역시 그랬다. 초반에는 나에게 강의를 주는 사람들이 매우 한정되어 있었다. 강의가 별로 없던 시기를 겪었기에 강의를 주는 업체가 늘어나기 시작하자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또 거절했다가 나한테 다시 일을 안주면 어쩌지? 하는 걱정으로 가기 싫은 일정도 거절하지 못하고 꾸역꾸역 하는 경우도 있었다.

한번은 부산에 강의요청을 받았다. 프리랜서가 된 지 오래지 않았을 때라 기업의무교육 강의도 병행하고 있던 때였다. 나와 계약을 맺은 업체는 한 시간 반짜리 부산강의를 요청했는데 강의료를 15만원 줄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부산까지 가는 차비는 전혀 제공되지 않는다고 했다. 심지어 교육시간이 오전 7시란다. 대형 영화관 직원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교육이라 손님들이 없는 시간에 교육을 끝내야한다는 게 이유였다. 생각해보시라. 7시까지 부산에 가기위해서는 전날 가 있던가 새벽 2시에는 출발해야 겨우 시간을 맞출 거였다. 자차를 이용해야 하는데 톨비와 차비를 계산해본다면 남는 돈이 거의 없는 일이었고 왕복 8시간을 운전해야하는 일이었다. 그 업체와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하겠다고 말했다. 지금 같으면 쿨하게 거절했을 일이다. 

물론 프리랜서가 된 지 얼마 안 된 사람이라면 경험을 쌓기 위해 돈이나 시간이 아니라 일을 고르지 않고 하는 것도 좋다고 본다. 나 역시 초반엔 성실함과 의리를 보여주기 위해 돈이 되지 않는 강의도 불러주는 곳마다 감사히 다녀왔다. 그러면서 강의컨텐츠도 풍성해지고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노하우도 쌓였다. 하지만 어느 정도 커리어를 쌓아가는 시점에서 여전히 할 일과 하지 않을 일을 고르지 않고 하는 것은 시간과 경력을 오히려 낭비하는 일이다. 특히 거절하는 것이 힘들어 상대방에게 끌려가듯 하기 싫은 일을 하는 것은 버려야 할 습관이다. 

누구에게나 거절은 어렵다. 하지만 우리는 프리랜서가 아닌가. 인생의 주체를 나에게 맞추고 살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우리가 할 일과 하지 않을 일을 선택하지 못한다는 것은 회사에서 시키는 일만 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게다가 어떤 일에도 ‘예스’라고 답하는 당신을 쉽게 생각하고 싸게 부리려고 하거나 함부로 대하려는 사람들이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나 역시 거절하지 못하고 저자세로 나가다가 여러 번 그런 일을 겪었다. 

프리랜서 강사라면 대부분 알고 있겠지만 강의를 연계해주는 강의업체에서 흔하게 강사들에게 교안을 달라고 요구한다. 원래 교안을 학교나 지자체 등에 제출하면 교안에 대한 비용이 교재비로 따로 정산되어 입금이 되거나 교재비가 강의비에 포함되기도 한다. 그런데 강의업체들은 강사들에게 교안을 공짜로 달라고 한 후에 강사들의 허락도 없이 마음대로 편집해서 자신들이 만든 교재처럼 함부로 돌려쓰거나 학교나 지자체에 그 교안을 내고 교재비를 따로 받기도 하는 것이다. 물론 교안을 제출한 강사들에게 주어지는 돈은 없다. 원래대로라면 강의업체에서 커리큘럼을 주고 이런 내용으로 해달라고 요청하면 강사가 교안을 만들어서 현장에서 강의를 하면 된다. 강의안을 달라고 요구하지 않는 게 맞다. 강의안을 교재로 쓰게 되어 요청을 하는 경우에는 교재비를 책정해서 주는 것이 정석이다. 다만 강사는 넘치고 일은 그에 비해 적기 때문에 강의업체에서는 내가 너희에게 대신 일을 주잖아 하는 식이었고 강사들 역시 일을 받아야 하는 입장에서 부당하다고 생각해도 거절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 두 업체가 아니라 강의업계에서 공공연하게 벌어지는 일이고 나도 수십 번이나 시간을 들여 작성한 교안을 아무런 대가없이 주곤 했었다. 내가 제출한 강의안의 일부내용이 내가 참여하지 않는 강의의 교재로 허락도 없이 재편집되어 사용되는 것도 많이 보았다. 콘텐츠는 강사 자신의 지적재산권이고 노하우인데도 말이다. 

그림:미래경제뉴스
이미지:미래경제뉴스

 

그러다 한 업체의 담당자가 여느 때처럼 강의주제를 주고 교안을 언제까지 달라고 요청했다. 바쁜 시기이기도 했고 더 이상 교안을 주고 싶지도 않아서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며칠이 지나고 당연하다는 듯이 카톡으로 연락이 왔다. 
 “교안요.”

담당자는 교안을 맡겨놓은 사람처럼 교안을 달라고 독촉했다. 내가 그동안 거절하지 못했기 때문에 담당자는 전혀 거리낌 없이 나의 시간과 노력을 부리려고 하고 있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업체 담당자에게 교안을 제출할 생각이 없고 교안을 꼭 제출해야 강의를 할 수 있는 거라면 해당강의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물론 그 업체와 다시 일하지 않더라도 상관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의 시간과 커리어에 대한 가치를 제대로 알아주지 않는 이들과 일하는 것은 앞으로도 미래가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거절을 하고 나자 담당자의 태도가 돌변했다. 담당자는 미안하다며 교안은 주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리고 그 이후에 내게 깍듯하고 예의를 갖춰 강의요청을 했다. 교안을 요청하는 일도 물론 없었다. 그 때 거절하지 못했다면 여전히 시간과 노력을 이용당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미지: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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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절은 프리랜서의 특권이다. 그리고 시간관리의 핵심이기도 하다. 물론 불안한 마음이 들 수도 있다. 프리랜서란 스스로 일을 찾아야하고 누군가 나를 써주지 않는다면 돈이 1원도 나오지 않으니까. 퇴직금도 없고 한 달 벌어 그 다음 달을 살아가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늘 ‘을’의 자세가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당신을 얕보고 무시하는 사람들과 장기적인 관점에서 계속 일할 수 있을까? 결국 발전 없는 관계는 깨지기 마련이고 그 관계를 빨리 끊어내는 것이 시간과 비용을 아끼는 일이다. 게다가 프리랜서는 특정 회사나 업무에 구속되지 않을 수 있다. 우리는 ‘갑과 을’이라는 구조에서 ‘을’에 속할지라도 갑의 횡포에 무작정 당하지 않을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이다. 

까짓 거 돈이 조금 덜 들어오면 어떠한가. 시간을 잡아먹으면서 당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거나, 돈도 안 되고 흥미도 없는 일이거나, 일을 준다는 빌미로 당신을 쉽게 값싸게 부리려고 하거나, 부당하거나 당신을 얕보는 사람들이 주는 일은 거절하고 쉬자. 
당신의 자존감과 가치를 떨어뜨리는 사람들과 일하는 대신 그 시간을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시간으로 쓰는 것이 낫다. 그게 아니라도 가족이나 친구와 밥을 한 끼 먹는 게 우리의 정신건강에 좋을 것이다. 만화책을 보거나 음악을 듣는 것도 좋겠다. 

이미지: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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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프리랜서는 오늘 일을 하면서도 내일 일을 걱정하는 불안과 친구처럼 함께 할 수밖에 없다. 불안은 과도하면 정신과 몸의 건강을 갉아먹지만 ‘생존’을 위한 발전된 삶을 살 수 있게 도와주기도 한다. 또 자유와 함께 오는 그런 불안도 즐겨야 프리랜서로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러니 때로는 쿨하게 거절하고 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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