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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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 이광희 기자
  • 승인 2020.04.05 22: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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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희의 마주보기]
사진:Pixabay
사진:Pixabay

희망  /  이광희

이렇게 해보아도 저렇게 해보아도
정말 되는 일이 없다
왜 이렇게 발걸음이 꼬이고 
가로막히고 넘어지는 것일까

전생에 나는 무엇을 잘못했을까
나는 열등한 DNA인가
슬픔이 나를 억누른다
슬픔보다 무거운 고통이 짓밟고 간다

지금 어려운 사람들도
한 때는 빛나는 왕년이 있었다고 한다
높은 산에 올라 세상을 내려다보던 왕년의 그 날을
그들은 자랑하고 그리워한다

내게는 왕년도 없었다
그저 아슬아슬한 외줄처럼
가늘게 가늘게 살아왔다
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 쫒기며 살아왔다

그래도 행복한 시간은 있었다
철 모르는 시절이어도
아내를 만나 사랑을 나누었다
가진 것이 없어도 두렵지 않은 한때의 시간이었다

아내도 나만큼이나 가진 것이 없고
가늘게 가늘게 살아왔다
가늘게 살림을 시작하고 
가늘게 아이를 낳고 가늘게 아이를 키운다

앞이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길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99%의 절망 속에서
확신 없는 발길을 내딛어 본다

아직 1%의 희망이 남아 있다면 그것은
나를 바라보는 아내와 아빠를 기다리는 아이들이다
이 몸은 어차피 부서질 몸이지만
아내와 아이의 웃는 얼굴은 삶의 그리움이다

99%의 절망이 내일은 줄어들고
1%의 희망이 내일은 늘어날 수 있을까
두려움 없는 아내의 환한 웃음을 그리워하며 
오늘도 겁먹은 발걸음이 휘청거리며 걷는다

 ▷에필로그                      

우리가 모르는 세계가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세계에 살고 자신보다 어려운 사람의 입장은 잘 알지 못한다.

최근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와 함께 온라인 배송이 크게 늘었다고 한다. 로켓배송이라는 이름의 일명 ‘쿠팡맨’이 새벽 배송 중 심정지로 사망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모든 배송 노동자들은 고강도 노동과 열악한 환경에 노출돼 있다. 하루 500~600개 이상의 물건을 배송하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건당 배송료는 700원 남짓이고 당일 배송을 완료하지 못하면 패널티를 받기도 한다. 삶이냐 죽음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경우는 ‘지금 죽음이냐’ 또는 ‘좀더 고생하다 죽음이냐’의 문제일 수 있다.

이 작품은 한 택배기사의 이야기를 담았다. 늘 불안하고 희망이 없는 노동 속에서 가족이라는 단 하나의 희망을 놓치지 않기 위해 발버둥하는 슬픔을 우리 사회는 배려하지 못하고 있다. 

나만 잘 살면 되지, 나 살기도 힘든데 남을 돌아볼 여지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우리는 이렇게 항변하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비단 택배기사의 이야기에 국한되지 않는다. 세계 경제대국에 진입하고 국민소득 3만달러에 도달한 대한민국에서 아직도 곳곳에 도사린 사회적 불평등이다.

안전장치가 마련되지 못한 사회적 불평등은 반드시 더 큰 대가로 우리 사회를 위협할 것이다. 모든 노동자들이 최소한의 건강유지와 인간적 삶을 지탱할 수 있는 기업의 합리적 대우와 정부의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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